위 영 (본지논설위원, '속삭이는 그림들'저자)

가끔 <파타고니아>를 생각한다. 인생의 종착점이라도 되듯 지구의 땅끝을, 구글어스에 들어가면 그저 눈 쌓인 하얀 땅이다. 블루가 섞인 수묵화, 초록은 어디도 없다.

그 황무함 때문인지 파타고니아는 셰익스피어에게 <템페스트>의 영감을 주었으며 생텍쥐페리에게는 <야간 비행>의 무대,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의 거인 역시 <파타고니아> 소산이다.

베르너 헤어쵸크 감독의 <유랑ㅡ브루스 채트윈의 발자취를 따라서> 라는 다큐가 있다. 좋아하는 감독이 만든 영화라 보았는데 브루스 채트윈이란 이름은 처음이었다. 다큐를 보고 나서야 그가 유명한 작가라는 것, 그것도 여행작가라는, 그래서 또 부랴부랴 브루스 채트윈의 책을 빌려다 읽었다. 고대 동물의 이야기로부터 기이한 사람들의 행적에 이르기까지 땅끝 <파타고니아>에 대한 이야기가 신비롭게 그려진다. 도식적인 여행기가 아닌 <파타고니아>에 대한 헌사임이 분명한, 기록의 차원을 넘어선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에 선 글. 그래서 존 업다이크도 "종이 몇 장으로 세상을 담은 작가"라는 찬사를 보냈을 것이다.

이본 쉬나드의 회사 <파타고니아>가 있다. 이본 쉬나드는 등산 장비를 만들다가 아웃도어 의류에 손을 댔고 부자가 되었다. 지금도 캘리포니아에 있는 <파타고니아> 본사 건물 로비에는 ‘죽어버린 지구에서 할 수 있는 비즈니스는 없다.’라는 글이 있다는데 철학과 통찰력이 함께하는 절묘한 문장이다.

이본 쉬나드는 요세미티 계곡에 있는 엘 카피탠 암벽을 오르다가 등반용 쇠못이 바위를 크게 훼손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당시 <파타고니아> 매출의 70%를 차지하는 쇠못을 생산하지 않기로 정했다.

2002년부터 <파타고니아> 매출액의 1%를 풀뿌리 환경활동가들에게 기부해 오던 이본 쉬나드는 2022년 '지구가 우리의 유일한 주주'(Earth is now our only shareholder)라는 공개편지를 썼다. 자신과 가족이 보유한 4조2000억원 규모의 회사 지분 100%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창립한 재단과 비영리 단체에 전부 넘긴다는...... 누구도 다시는 쓸 수 없는 전무후무한 아름다운 편지다.

<거기 그곳에 세상 끝에 다녀오다>라는 사진작가 지미 친의 책에는 내 생애 도저히 가볼 수 없는 곳들이 글과 사진으로 소개된다. 아름답고 고운 정경이 아니다. 두려움과 경외심을 주는, 어느 때는 마치 날카로운 채찍처럼 후려치는 풍경이다. 그 책에서 <파타고니아>의 이본 쉬나드가 등장한다. 노스페이스의 창업자인 더그와 함께 세러 크리스틴이라는 새로운 산길을 최초 등반하는 기록이다.

2009년 2월. 그 때 이본은 1968년 피츠로이를 오를 때 썼던 안경을 썼는데(그렇다면 그 안경은 무려 40여 년이 넘었다) 1980년대에 입었던 바지(30여년?)를 입고 있었다. 지미 친은 그가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그의 골동품 아이젠이 끊어질까 봐 걱정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는 옷이나 장비가 닳아 못 쓰게 될 때까지 써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평생을 살았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신념으로 삼고 사는 진실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진실한 행위가 아닌가.

<파타고니아>는 ‘우리 옷을 사지 마세요’ 캠페인을 벌이는 동시에 인간의 건강과 자연환경을 해치지 않는 신소재를 개발해서 오래 입을 수 있는 견고한 옷을 만든다. 작년 가을 함께 유럽을 여행한 미군 장교인 조카는 여러 장의 <파타고니아> 상표를 입고 있었는데 중고라고 나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

산책하러 정발산에 갈 때 날씨가 맑으면 북한산이 선명히 보인다. 이본 쉬나드는 1960년대 주한미군으로 근무하며 북한산 인수봉에 '취나드 길'를 개척했다. 바위를 오르는 사람들은 지금도 이본 쉬나드의 취나드 길을 오르고 있을 것이다. 북한산을 볼 때마다 이본 쉬나드와 <파타고니아>가 저절로 생각난다. 내가 겨우, 살짝 맛본 사막은 그랜드 캐니언 가는 길의 모하비 사막이다. 수십 년이 흘러도 거의 자라지 않는다는 작은 관목들, 드문드문 있어 오히려 사막의 묘한 기운을 더해주던, 가도 가도 끝나지 않던 그 변함없는 풍경들이 왜 그리 매혹적이었던가, 땅의 속살이었을까, 땅이 지닌 근원.....땅이 속해 있는 지구라는 물체의 시원을 보여주는, 땅은 단순한 공간이 아닌, 시간을 지닌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하던, 혹시 자연 그대로의 황무함은 사람의 외로움과 맞닿아 있는 것일까. 아, <파타고니아> 그 눈 덮인 사막은 어떤 곳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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