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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스또예프스키, 사진 출처 : 위키백과 |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발표한 1864년, 저자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아내는 폐병으로 투병 중이었고 자신은 도박 중독으로 노름빚에 시달리면서도 바람까지 피우고 있었다. 건강도 좋지 않은 43세, 의욕적으로 작품 활동을 할 시기에 방탕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시기로서는 ‘러시아의 대문호’가 된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중요한 건 그 상황에서도 저자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망가진 상황에서도 포기, 좌절하지 않고 꾸준히 자기 일에 집중한 결과가 그를 꿈꾸던 자리로 이끌어 간 사실이 불확실의 시대를 사는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좋은 본보기 되면 좋겠다. 불과 2년 후에 ‘죄와 벌’이라는 역작이 탄생하리라고는 본인도 예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하로부터의 수기”의 <1부, 지하실>은 다음과 같은 고백으로 시작한다. ‘나는 병든 인간이다. 나는 악한 인간이다. 나는 호감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다.’
<2부. 진눈깨비 때문에>는 더 어려운 상황에서 썼다. 저자가 동생에게 밝힌 편지에서 우울하고 건강은 더 나빠졌고 신경쇠약에 시달리는 상황을 밝히고 있다.
작품 속 화자인 지하 생활자는 키 작고 여윈 남자로 퇴직한 하급 관리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분석하고 있으며 대화자와의 긴 독백으로 논쟁을 벌인다. 1, 2부에서 그는 과거를 회상하며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걸기도 한다. 그는 먼 친척으로부터 6천 루블을 유산으로 받고는 그의 ‘구석’에, ‘더럽고 구역질 나는’ 뻬쩨르부르그 교외의 한 방에 영원히 안주하게 된다. 아웃사이더로서 세상에 반항하고 있으며 보통 사람들의 삶의 양식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의 혀가 비틀려 있는 만큼 마음도 뒤틀려 있다. 외부 세계를 향한 혐오는 바로 자신을 향한 혐오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기형적인 인간으로 만들었는가. 병적인 주인공을 통해 독자들에게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그의 삶이 비극으로 흘러간 원인은 무엇일까.
화자의 수기가 다루고 있는 시기(1840년~1860년)는 저자에게 가장 극적인 시기였다. 저자 스스로 ‘몽상가’로 젊은 시절 매료되었던 이상주의, 감상주의에 대해 비판적 태도로 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낭만적인 ‘몽상가’는 그의 소설 “상처받은 사람들”에서 작가 이반 뻬뜨로비치와 이반 뚜르게네프의 “잉여 인간의 일기”의 작중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잉여 인간’들은 천박하고, 공허하고, 허위의식으로 똘똘 뭉친 위선자들이다. 지하 생활자는 잉여 인간의 또 다른 사회적 형상인 셈이다. 그는 러시아 문학에 등장하는 작은 인간들, 관청 서기들, 몽상가들, 가난한 사람들의 흐름을 완전히 의식하고 있는 대표자이며 선두 주자이기도 하다. ‘가난한 사람들’의 제부쉬낀도 이 계열에 속한다. 우리 문학에는 ‘이상’의 “날개”에 필적하리라.
‘지하실’의 비극적 풍경은 러시아의 현실이다. 저자는 “나는 내가 러시아의 다수를 대표하는 진짜 인간을 묘사한 첫 번째 사람이라는 데에, 그리고 이 인간의 추악하고 비극적인 측면을 처음으로 드러낸 사람이라는 데 대해 긍지를 느낀다. 비극은 추악함을 의식하는 데 있다. 고통, 자기 처벌, 더 나은 것을 의식하지만 그것을 성취할 수 없다는 불가능성,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모든 이들에게 있어서 마찬가지일 것이며 따라서 개혁을 하려고 노력할 가치도 없다는 명백한 확신으로 되어 있는 지하실의 비극을 나는 홀로 묘사했다.” 는 말로 그 현실을 표현한다. 이 작품으로 저자가 하고 싶은 의중을 표현한 것이다. 시대적 배경은 작품 이해에 도움을 준다. 이 작품이 발표되고 얼마 안 된, 그해 4월 16일에 저자는 죽은 아내의 머리맡에서 수첩에 자신의 반성을 적었다고 했다. 그리고 7월 10일 형 미하일마저 떠나보내고, 9월 25일 친구 아뽈론 그리고리예프를 떠나보낸다. 다음 해 형 미하일이 운영하던 [세기]지가 재정난으로 발행 중단되고, 그해 여름에 출판업자 스쩰로프스끼와 계약을 맺고 자기의 모든 작품을 양도했다. 1866년 11월1일까지 일정 페이지의 새 소설을 탈고하겠다고 약속하고, 계약을 이행하지 못할 때 스쩰로프스끼는 보조금 지급 없이 이후의 모든 작품에 대한 저작권을 가져가기로 하고 겨우 3천 루블에 모든 작품의 저작권을 팔아 버렸다. 그 3천 루블은 다음 달 비스바덴 도박장에서 날려버리고 여기저기 돈을 구걸한다. 이 상황이면 스스로 지하 생활자의 심정이 되지 않았을까.
제1부 ‘지하실’에서 지하 생활자는 자기 개성을 분석함으로 인간 행동의 절대적 비합리성을 도출해 낸다. 인류의 삶에 반영하며, 자기 체험을 일반화시키며, 이상주의와 합리주의를 비판한다. 인간 행동에 관한 합리주의자의 순진하고도 기계적인 개념을 드러내고 있다.
제2부 ‘진눈깨비 때문에’에서 창녀 리자와의 만남으로 몽상가인 지하 생활자는 파국을 맞이한다. 그는 민중의 삶과 단절된 러시아의 유럽화된 교육을 받은 계층의 상징이다. 도덕적 타락 속에서 살아있는 것들로부터 소외되어 지하실에 혼자 게으르게 살고 있는 몽상가는 우리 모두도 더 많이 혹은 조금 적게 삶의 정도에 따라 방황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모델이다.
소외된, 민중들의 삶으로부터, 토양으로부터, 민족으로부터 단절된 개인은 늘 도스또예프스끼 작품들의 중심 주제이다. 지하 생활자는 초 도덕적이고 반사회적이며, 비이성적이다. 그의 억제할 수 없는 이기주의와 파괴적인 개인주의, 독립 의지에의 요구는 저자의 눈으로 볼 때, 개인과 사회에 모두 파멸을 가져올 수밖에 없는 비극으로 비친다. 이런 비극을 인식함으로써, 사회는 개인을 향한 학대를 멈추고, 개인은 사회를 향한 요구를 철회하며 단지, 그리스도를 지하실로부터 탈출하는 유일한 출구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복음적이다.
뻬쩨르부르그는 지하실의 비극이다. 지하 생활자는 이 지구상에서 가장 추악한 도시인 뻬제르부르그에 산다는 이중의 불행을 짊어졌다고 말한다. 환상적인 백야와 인간 존재에 대한 미지의 혐오들로 가득한 이 도시는 저자의 눈에 인간의 사회적 죽음의 상징이다. 인간을 인간으로부터 분리하여 어두운 도시로 몰아넣는다. 고통으로 인간을 압도하며, 모욕하고 인간의 이상들을 왜곡시키며, 사회의 건설적인 일원이 되려는 노력을 육체들과 영혼들에 대한 약탈자의 노력으로 변형시킨다.
지하 생활자가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지하실은 뻬쩨르부르그의 현실 세계뿐만이 아니다. 그의 환상적이고 움츠러들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의식의 내면세계 또한 지하실이다. 그는 그를 학대하는, 완전히 논리에 의해서 지배받고 있다고 보는 현실을 거부한다. 논리가 지배하는 정상적 인간 세계에 대한 그의 태도는 삶이 아니라 죽음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정상적인 인간에게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것이 지하 생활자에게는 이성과 논리의 감옥으로 느껴질 수 있는 현실 감옥이 될 수 있음을 말한다. 인간 소외와 그에 대한 절망적 반항의 상징이다.
지하 생활자의 비극적 삶의 원인은 스스로 지적하기를, 책을 너무 많이 읽었고 생각하는 데 필요 이상의 시간을 낭비했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책을 많이 읽는 게 비극적 삶의 원인일 수는 없다. 문제는 허구 세계에서 얻은 간접 체험을 현실에서 직접 실천하려 함으로 비극을 자초하는 것이다. 저자는 작품 속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다. 사실주의가 아니라 낭만주의에 치중되어 있다. 현실 도피를 위해 책을 읽었다는 점이 현실에서 충족시킬 수 없는 욕망을 책이라는 매개로 대리만족을 얻으려는 의중으로 현실과 더 큰 괴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현실 적응이 더 힘들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다른 한 가지 원인은 그가 타자와의 관계를 동등한 것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지배자와 피지배자, 상하관계로 인식하는 사고에 고착된 점이다. 심한 열등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반면 반대의 상황의 약자에게는 쓸데없는 우월의식을 부추긴다. <다음호에 계속>
도스또예프스끼, “지하로부터의 수기” 도스또예프스끼, 계동준 옮김, 열린책들,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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