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정 목사(복된교회)

심어 놓은 벼가 땅 내 맡고 싱싱한 기운으로 자라는 들판에 흥겨운 음악이 그득합니다. 걸판진 가락에 이끌려 다가가니 ‘창부타령’입니다. 이어서 ‘신고산이 우르르’로 이어집니다. 소리 주인은 밀짚모자를 눌러쓴 노인입니다. 큼지막한 음향기기는 노인의 연수만큼이나 낡았지만, 소리는 들판에 가득하도록 낭랑합니다. ‘소리가 좋습니다.’ 인사를 건넸더니 노인은 신바람이 났습니다. ‘노래야 민요지, 암만! 요즘 노래가 뭔 노랜가, 당최 시끄럽기만 허지’ 노인의 넋두리와 이어지는 ‘새타령’을 뒤통수로 듣습니다.

타령은 듣고 보면 서글픈 흥이 돋는 노래들입니다. 새 말로 ‘웃픈’ 가락들입니다. 이 노래들이 만들어진 당시의 사회 정서가 깃들인 까닭이겠지요. 그 노래를 듣고 자란 분들은 자연 그 노랫가락이 흥겨울 법 하구요. 내가 처음으로 들은 노래들을 부르던 이미자, 조미미, 김세레나 등의 음악이 그다음 세대입니다. 다행히 ‘국민의 방송 KBS’에서 철 지난 노래를 그리워하는 국민 정서를 배려하여 “가요무대”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지만, 전에 그 추억의 노래들을 더러 들었습니다.

타령으로 흥겨운 발걸음에 내 새대의 노래들을 들춰냅니다. 이미자, 김세레나가 썰물처럼 물러간 자리에 밀물로 밀려든 건 통기타 세대입니다. 송창식을 필두로, 조영남, 박인희, 둘 다섯, 요절한 김정호, 김광석, 키보이스, 김민기, 양희은 등등 헬 수 없는 가수들이 스쳐 갑니다. 그 노래는 그 시절의 감성이 담겼습니다. 듣거나 부르면 그 시절의 아련함에 빠져들지요. 지나간 노래라도 그 음원에 닿을 방법들이 많으니 접근도 쉽습니다.

노래의 감성에 대한 내 나름의 연구 결과는 주로 사춘기 때 노래가 평생의 감성에 영향을 준다는 관찰입니다. 내 나이 사람들이 사춘기를 지날 때는 소위 7080, 통기타 가수들 세상이었습니다. 그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지요. 내게 새로운 노래의 출발은 HOT였습니다. 전자음이 강력하고 랩이 가미된 노래들입니다. 감정 이입이 어려워 슬그머니 비켜섰습니다. 그다음 세대의 노래는 아예 놓아버렸습니다. 최근 세계의 젊은이가 다 좋아한다는 BTS 노래는 아예 모릅니다. 일부러 찾아 들어보았지만 생뚱맞습니다. 그야말로 노래 같은 감흥이 전혀 안 느껴집니다. 그런 나를 10대나 20대가 보면 논두렁에서 타령 듣는 노인 보는 느낌이겠지요?.

교회서 부르는 찬송가도 시대 구분이 있다는 발견입니다. 찬송가만 부르던 시대랑은 아주 다릅니다. ‘인생 모경가, 허사가, 주님 고대가, 성도의 행진곡’ 등 복음의 진수를 담아 부르던 이성봉 목사님 시대의 부흥회 찬송은 지금 들어도 그야말로 은혜가 충만합니다. 설교 중에 더러 불러 보지요. 그런데 나보다 다섯 살 적은 각시만 해도 그 노래 부르는 걸 경계합니다. 더 젊은 세대에게는 거의 골동품 취급받습니다.

교회에 노화가 심합니다. 현재 교회의 주류를 이루는 노인 세대는 그런 찬송으로 은혜 생활하시던 분들입니다. 젊은이들이 주도해서 부르는 새로운 노래가 마뜩잖습니다. 장로님으로 고향교회를 지키고 있는 내 형님도 그게 시험 거리입니다. 공예배 시간에 복음송을 불러도 되느냐 등의 시비가 있은 지 오래지요. 같은 복음송이라도 ‘내게 강 같은 평화’로 흥이 충만한 세대가 있는가 하면 엇박자투성이로 나도 따라 부르기 벅찬 CCM 세대로 넘어간 지 오래입니다. 눈치로 겨우 흉내만 내다 지쳐버리기 일쑤입니다. 시골 어느 교회 일을 좀 간섭하게 되었는데요. 80에 가까운 장로님 한 분이 불만을 토로합니다. 목사님이 맨 젊은 사람들이랑 어우러져 어른들이 잘 따라 부를 수 없는 찬송만 부르는 게 마뜩잖다는 소리입니다.

세대간의 조화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쉽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이성적인 문제라면 논의가 되고 조정이 됩니다. 노래는 가사에 박자와 음정을 덧씌운 작용입니다. 이성으로 조정, 통제되는 영역이 아닙니다. 옳고 그릇됨의 문제가 아닙니다. 쉽게 탓할 수 없는 감정의 영역입니다. 감정은 거스르면 해결의 길이 잘 없습니다. 누구나 그 감성이 고도로 발달한 사춘기 어간에 새겨진 노래들이라야 우호적인 걸 어쩌겠습니까. 겨우 ‘상대방의 감성을 존중합시다’라는 말로밖에 끼어들 수 없는 문제입니다. 누가 있어 노래의 세대 갈등에 해답 내려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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