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아버지의 형제 두 분과 함께 작은 배를 타고 다른 섬에 가셨다가 돌아오시던 길에 거센 바람과 파도에 휩쓸려 그만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셨다. 당시 내가 자란 섬은 너무 작아서 다른 이웃 큰 섬에서 땔감이나 물을 가져와야 했다. 엄마도 그런 사정으로 아주 작은 허름한 배를 타고 다른 섬을 다녀오시다 비명에 하늘나라에 가신 것이다. 그때 엄마 나이 23세, 꽃다운 나이셨다. 지금도 엄마를 생각하면 가슴이 저미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다. 뼈에 사무치도록 한없이 그립다. 많은 엄마들이 그렇듯이 우리 엄마도 형과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을까? 다른 엄마들처럼 우리 얼굴에 뽀뽀하며 “예쁜 우리 아가들아 엄마는 작은 아빠들과 함께 얼른 다녀올게, 할머니와 함께 잘 있어…”라며 헤어진 것이 이 세상에서 영영 마지막이 될 줄이야…. 바닷물이 배를 삼킬 때 엄마는 아직 젖도 떼지 못한 나와 형을 생각하며 얼마나 그 고통에 울었을까? 내가 눈을 감고 주님나라에 갈 때까지 나의 엄마 생각은 내 마음에서 결코 지울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영영 엄마는 바닷속 깊은 곳에 가셨다. 엄마 생각이 뼈저리게 사무칠 때면 무덤에라도 찾아가 실컷 울며 엄마, 엄마 하고 부르고 싶지만 무덤도 없기에 그럴수도 없다. 눈만 뜨면 서해 바다가 보인다. 바로 엄마를 삼켜버린 밉고 야속한 바다…. 나는 주님 앞에선 눈물을 많이 보였다. 하지만 세상을 향해서는 슬픔도 눈물도 다 감추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험한 세상을 헤쳐 가려면 강해야 했기 때문이다. 일부러 내 마음을 감추며 두 얼굴로 살았는지도 모른다. 일부러 엄마생각을 지워도 보며 감추며 산 것 같다. 이 책을 쓰면서 평생 처음으로 엄마, 엄마 내 사랑하는 울 엄마~ 하고 목놓아 불러본다.

엄마가 훌쩍 떠나신 후

엄마는 그렇게 훌쩍 떠나 가셨다. 그리고 나는 할머니의 빈 젖을 빨며 자랐다. 동네 사람들은 엄마 없이 키우기엔 너무 어리고 먹을 것도 없어서 얼마 살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고 했단다. 당시에는 우유가 없어 갓난아이에게 먹일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할머니는 나에게 혼신의 힘을 다 쏟으셨다. 고모님도 다니던 국민학교를 그만두시고 아기인 나를 업어 키워주셨다. 할머니는 어떤 일이 있어도 형과 나를 섬이 아닌 뭍(육지)으로 내보내시려고 애를 쓰셨다. 형과 나만큼은 고기 잡는 어부가 되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그래서 할머니는 어려운 형편에도 형을 군산의 학교로 보냈다. 나까지는 힘에 부쳐 보내지 못하셨다. 당시 섬의 상황은 육지로 학교를 가지 않으면 어부의 길을 가야만 했다. 가난한 섬 생활에서는 할 수 있는 한 소년들도 가까운 바다에 나가 오징어 잡는 일을 하여 적은 돈을 받곤 했다. 그러나 아무리 굶어도 손자들은 절대로 어부의 삶을 살게 하지 않으리라는 할머니 밑에서 자란 나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바다에 나가 돈을 벌지 않아도 되었다.

내 할머니

그래서 나는 군산으로 나가기까지의 공백 기간에도 할머니 품에서 보호를 받았다. 할머니는 내게 어머니였다. 국민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는 할머니 젖을 빨고 할머니 치맛자락을 붙들고 다녔다. 할머니는 내 삶의 전부였다. 이런 할머니의 사랑은 사춘기 동안 나를 흔들리지 않게 잡아주었다. 후에 할머니는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잘 믿으시다가 집사님이 되셔서 천국에 가셨다. 할머니가 천국에 가시고 난 뒤 나는 한동안 어디에 마음을 두어야 할지 몰랐다. 외로움과 허전함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만큼 할머니가 안 계신 자리는 내게 너무나 컸다. ‘할머니, 할머니, 지금 천국에 계시지요. 천국에서도 손자들 때문에 기도하시느라 바쁘시지요? 할머니 기도 때문에 어부의 아들이 사람 낚는 어부가 되어 처음으로 엄마 이야기, 할머니 이야기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게도 손자들을 사랑하셨던 할머니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할머니, 훗날 천국에서 뵈면 더 사랑 많이 해주세요.’ 손자를 어부의 자식으로 만들지 않겠다는 할머니의 뜻이 있었기에 나는 작은 섬 출신이면서도 예수님을 만나는 절호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어려운 환경에서 보낸 어린 시절은 나를 소심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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