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정 목사(복된교회)

태국, 선교지에 한 열흘 다녀오느라 인천공항, 방콕의 ‘수완나품’ 공항을 지났습니다. 모두 거대한 국제공항들입니다. 미끈한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화려한 공항을 활보하는 동서양 사람들 모두 위풍당당해 보입니다. 짐을 잔뜩 욱여넣은 캐리어 바퀴가 스르르 장애 없이 미끄러지는 것도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니 신기합니다. 여정의 동반자인 선교위원장님은 해외 업무가 많아 항공사의 ‘다이아몬드 등급’ 고객입니다. 덕분에 들러 본 그들만의 라운지는 더 별천지던데요. 평상시라면 허기가 와도 공항 식당이나 카페는 잘 이용하지 못합니다. 원체 비싸거든요. 그런데 다이아몬드 등급이 이용하는 라운지는 웬만한 호텔 수준의 먹거리들이 즐비합니다. 다 공짜입니다. 심지어 길게 늘어선 줄을 슬쩍 비켜 옆줄, 아무도 기다리는 사람 없는 데스크에서 여유 있게 탑승 수속을 밟기도 했습니다. 짐에다 빨간딱지를 붙여 제일 먼저 나오는 혜택도 누렸습니다. 덕분에 기다리는 거 제일 힘든 제게 제법 럭셔리한 일정이었지요.

북녘을 탈출한 동포들이 중국, 미안마, 라오스,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등지를 거쳐 간난신고 끝에 인천공항에 내리면 그 번쩍거리는 건물을 보고 소스라친답니다.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위풍당당하게 만드는 화려함입니다. 그런데 가난에 찌들어 살다 탈북한 동포들은 유리 같은 대리석 바닥을 걸을 때 주눅이 들어 신을 벗어야 할 듯하다지요. 크고 웅장한 건물이 어떤 사람들을 주눅 들게도 하는 모양입니다.

태국 공항에서 제복 입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헐렁하거나 까무잡잡한 모양으로 군이나 경찰은 아닙니다. 적어도 5~60명, 혹은 100여 명은 족히 되어 보이는 무리입니다. 동행하신 장로님 설명으로는 ‘산업 연수생’이랍니다. 인천공항에서 유사한 분들을 다시 만났습니다. 어깨를 잔뜩 말아 주눅 든 사람들의 제복에는 영어로 ‘타이랜드’, ‘캄보디아’ 등 나라 이름을 새겼습니다. 군대처럼 오와 열을 맞춰 선 사람들의 얼굴에 눈길을 두니 우리 주변에서 자주 만나는 동남아시아 청년들입니다. 서울, 경기로 가는 버스 탑승구는 가깝습니다. 그 대열은 먼 지방으로 떠나는 맨 마지막 13번 버스 탑승구도 지나 비상용으로 마련된 14번 탑승구로 빠져나갑니다. 비행기 안에서나, 공항을 통과할 때, 혹은 한국에 닿으면 자신들이 살던 나라 보다 서늘할 것을 안내받은 모양으로 긴팔옷입니다. 덥기보다는 그 표정들과 어우러져 무거워 보입니다.

나는 막 그들이 사는 마을들을 떠나왔습니다. 개와 파리가 함께 사는 마을들입니다. 들이 넓어 먹을 거 걱정은 덜 한 나라지만 땅뙈기 부쳐 먹는 거 말고는 아무 산업이 없습니다. 위생 상태가 열악합니다. 잘 씻지 않는지 가까이 서면 체취가 심합니다. 오래 입어 색 바랜 메리야스 목이 거의 배꼽까지 늘어지게 입고도 천연덕스러운 미소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중 빳빳한 사람들로 고르고 뽑아 한국의 꿈을 심어 주었습니다. 그들이 오와 열을 맞춰 희망의 땅 한국으로 돈벌이 오는 중입니다. 아직은 가난하여 그리 위축되어 보였던 겁니다.

‘대한의 용사’라는 이름으로 비행기도 아닌 배를 타고 떠났던 월남전 참전 용사들은 삼촌뻘 사람들이었지요. 그 덕에 불도저를 들여왔고 고속도로를 만들었지만 많은 삼촌이 유골로 돌아왔습니다. 가난한 나라여서 별 보상도 없이 서러웠던 죽음을 ‘평화의 용사’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덮었을 뿐입니다. 그 가난의 역사가 한 바퀴 더 돈 다음에는 열사의 땅, 사우디아라비아 모래바람 속으로 돈 벌러 떠나던 형 얼굴도 떠오릅니다. 제법 단위가 다른 돈을 모아 왔습니다. 그들 모두는 공항의 오열 맞춘 사람들처럼 한결같이 가난으로 찡그린 얼굴들입니다. 그 형들의 땀방울이 이 나라 부자 만드는 역할을 톡톡히 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덕지덕지 가난을 궁상스럽게 걸머진 동남아시아의 청년들 행색은 화려한 공항 건물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들 앞에 행색은 초라하지만 당당하여 공항 따위는 씹어 먹을 듯 천연덕스러운 인도자는 깃발을 들었습니다. 깃발이래야 허접한 막대기에 땀에 절어 색바랜 메리야스를 얼기설기 묶어 만든 겁니다. 오와 열 사이로 분주히 다니며 이눔, 저눔을 다독이는 그이가 낯익습니다. 갸우뚱한 내 눈에 그 형형한 눈빛이 닿고서야 예수신 줄 알아보았습니다. 삼촌들, 형들이 이 땅을 떠날 때도 저분은 저러고 다니셨습니다. 아, 그 덕에 우리가 산 겁니다.

그들이 떠난 14번 출구, 휑한 자리에 껍데기로 남은 예수 부하, 이 목사는 수족은 마비된 채 그 깃발 내가 들어야 했다고 되뇌고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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