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5.1.23 목 15:08
상단여백
HOME 기고/오피니언 특별기고
코메니우스 심층분석 (26)역사적인 인물 코메니우스와 형제연합교회의 신앙
  • 기독교헤럴드
  • 승인 2020.03.18 17:10
  • 호수 476
  • 댓글 0
정일웅 교수(한국코메니우스 연구소장본지 논설위원)

코메니우스는 역시 화란으로 망명해 갔을 때, 네델란드의 미델부르그에서 시작된 네델란드 초기의 경건주의 운동가인 라바디(Jean de Labadie,160-1674)를 알게 되었고, 그와의 교제를 통하여 화란의 경건주의 운동에 또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것은 코메니우스가 라바디의 경건운동을 지지하며, 배후에서 멘토의 역할을 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교회의 역사연구에서 밝혀졌다. 그리고 이전에 라바디는 루터파교회의 경건주의 운동가인 스페너(Spener)를 만났으며, 독일 경건주의 운동에도 라바디(Labadie)는 영향을 미친 것으로도 평가된다.

  코메니우스는 역시 독일 루터파 경건주의운동의 주도자였던 스페너(Philip Jacob Spe- ner,1635-1705)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직접적인 것은 아니었으나, 스페너는 코메니우스의 마지막 작품인 “꼭 필요한 한 가지”(Unum necessarium, 1668)라는 책을 잘 알고 있었으며, 코메니우스 사후에 그의 친구에게 그 책을 구해서 읽었던 것으로 역사는 전하고 있다. 코메니우스는 그 책에서 인간이 세상의 미로를 헤쳐 나가기 위한 꼭 필요한 한 가지를 제시하였는데, 그것이 그리스도가 제시한 기독인들의 삶의 법칙이었다. 거기서 코메니우스는 불필요한 것과 악한 것, 거짓이 가득한 미로와 같은 세상에서 꼭 필요한 것, 선한 것을 잘 선택하여, 그 길을 걷는 것이 세상의 미로를 탈출 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분명히 제시해 놓았었다. 그리고 눅10:38-42절의 말씀을 근거하여, 자신의 삶이 마르다와 같이 세상일들에 분주해했음을 고백하며, 이제는 꼭 필요한 한 가지, 주님의 무릎 앞에 앉아서 그의 말씀에 경청하는 마리아의 삶의 태도를 따르겠다는 결단을 묘사하였던 것이다.
  스페너는 코메니우스의 ‘꼭 필요한 한 가지’란 이 책의 도움으로, 그의 유명한 작품 “경건의 갈망”(Pia Desideria)이란 책을 만들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스페너는 코메니우스가 루터파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 항상 깊이 경계하였으며, 또한 코메니우스의 전 우주적인 창조세계의 관점과 교파를 뛰어넘는 교회 연합적인 정신과 정치와 교육을 포함한 삶(사회)의 개혁은 그에게서 전적으로 외면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할례(Halle)에서 루터파 경건주의운동을 주도했던 스페너의 후계자 헤르만 프랑케(H.Franke,1663-1727)는 역시 코메니우스의 경건과 교육사상에 큰 영향을 받았던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그 이유는 특히 1935년 취체브스키(D. Tschizewskij)에 의하여 발견된 코메니우스의 “인간 사물의 개선에 대한 보편적이며, 포괄적인 제언”이란 미완성 유작의 라틴어 원고 더미가 바로 할례에서 프랑케가 설립하여 운영하던 고아들을 위한 도서관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코메니우스의 작품이 프랑케에게 전해졌고, 프랑케는 역시 코메니우스의 작품을 읽고 출판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그 대신 경건운동의 사상과 방법에서 코메니우스의 영향을 받았으며, 특히 교육적인 관제 이해에 있어서 코메니우스의 것들을 그대로 수용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프랑케는 이와 같이 많은 부분에서 코메니우스의 교육사상을 수용하면서도, 다만 그의 교회연합정신은 역시 거절하게 데는데, 그 이유 역시 루터파 안에서의 경건주의운동을 원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스페너 보다 프랑케는 코메니우스의 세계개혁의 제안과  삶의 개혁에 관한 방법을 그대로 수용하여 자신의 것으로 삼기도 했었다. 그러나 스페너나, 프랑케 모두 코메니우스의 사상에서 큰 도움을 입고 있으면서도 코메니우스의 이름에 관해서 침묵한 것은 역사연구에서 비판적으로 지적되는 점이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코메니우스와 경건주의운동과의 관계에 대하여, 독일 뮌스터대학의 역사신학교수, 마틴 브레히트(M. Brecht)는 그의 논문에서 코메니우스가 유럽의 경건주의운동의 전 단계의 중심에 서 있었던 인물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유럽 경건주의운동의 시작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해주고 있으며, 신학자 코메니우스는 초기 유럽의 경건주의운동에 배열되어야 할 인물일 뿐 아니라, 그는 역시 경건주의운동에 깊이 영향을 미쳤던 인물이 분명하다는 사실을 밝혀주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들은 자신을 비롯한 여러 독일의 역사학자들이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사실임을 또한 그의 글에서 분명히 밝혀주었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좋아요 0

기독교헤럴드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