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버지는 긴 방황의 끝에 당신 인생을 막장으로 몰아넣으셨습니다. 당신 성정에 맞지 않게 ‘이찌방, 니방, 삼방’ 3교대로 일하는 탄광에 취업하신 겁니다. 그 출근 시간이 벌건 대낮일 때가 있습니다. 큰 키로 손바닥만 한 ‘벤또’ 하나 들고 건달처럼 건들건들 나서시던 모습이 가을볕을 배경으로 기억됩니다. 더러는 시간이 가늠도 안 되는 깊은 밤, 혹은 첫새벽일 때도 있습니다. 월급이 아니라 보름에 한 번 주는 ‘간조’를 받아, 그 복잡한 출근 시간을 맞추시려 자명종 시계를 들여오시기 전까지 우리의 시간은 모호했습니다. 그 시계라는 물건도 당최 미더운 건 아니었어요. 맨날 낮 열두 시 뉴스 시간에 라디오 있는 옆집으로 달려가, ‘뛰, 뛰, 띵!’ 하는 KBS 뉴스의 시보 소리에 시침, 분침을 새로 맞춰 줘야 했기 때문입니다. 태엽을 안 감아 더러 멈춰 서는 일도 잦았구요.

여하튼 그 물건이라도 없을 때, 미명에 잠에서 깨신 어머니는 가장의 출근 시간에 ‘벤또’까지 곁들인 식사를 마련하기 위해 시간 재단에 조급하셨습니다. 희뿌옇게 밝아오는 창호지 문에 손그림자를 비춰 그 농담(濃淡)으로 제법 정확한 시간을 가늠하셨습니다. 창호지 한 장으로 나눠 놓은 방안과 밖의 조도(照度) 차이가 그림자를 만들고 그 그림자의 짙고 옅음을 따라 한 번 더 돌아누워 피곤한 삭신을 달랠지, 발딱 일어나 서늘한 미명의 냉기 속으로 내달릴지를 가늠하시는 거지요. 돌이켜 생각하면 기막힌 측량입니다.

내 자리 어두우니 밝아오는 바깥이 잘 보이는 법입니다. 내 어머니들은 모두 당신 선 자리가 어두우니 고달픈 몸을 이고서라도 먼저 밝아오는 바깥을 바라보며 사셨습니다. 먼동이 채 트기도 전에 그야말로 미명의 바깥을 관찰하시는 게 일상입니다. 당신들 사는 자리가 팍팍하니 ‘낮이나 밤에나 눈물 머금고 내 주님 오시기만 고대’하는 믿음으로 사셨지요. ‘햇빛보다 더 밝은 천당’은 궁극의 소망이셨습니다. 지금은 그 나라에서 온몸으로 그 밝음 속에 사시겠지요.

당신 인생에 자명종 야광 시계가 밝혀주는 형광 불빛보다 천배나 밝은 전기가 들어오고 그보다 더 밝은 날들이 열렸습니다. 시방은 한낮에도 방안에 전깃불을 켜고 삽니다. 당최 어둠이란 게 자취를 감춘 세상입니다. 잠시 어둠으로 숨어들고 싶어도 자투리 어둠마저 스며들 곳이 없는 세상에 어쩌면 내동댕이쳐진 거 아닐까요?. 정말이지 세상을 너무 밝아요.

내가 선 자리가 밝으니 밖을 내다볼 필요도 없고 보이지도 않습니다. 부엌도, 화장실도 다 집 안에 있습니다. 게다가 온 세상을 다 들여다 놓는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스마트 폰까지 갖췄으니 인생살이가 집 안에서 다 되는 걸요 뭐. 행여 바깥 소산이 필요하다 싶으면 온갖 배달 시스템으로 당장 가져다 누릴 수 있습니다. 지금 세상은 거의 천국입니다.

이 나라, 교회의 실상도 다르지 않습니다. 궁색으로 찜 쪄 먹을 듯한 세상을 사는 동안 교회는 바깥세상 같은 하늘나라를 바라보는 창이었습니다. 삶은 어둡고 천당은 밝은 곳이었습니다. 어둠 속에 사니 밝은 천국이 환하게 보였습니다. 여기가 빈궁하니 거기를 사모했습니다. 고달파도 그 나라 바라보는 낙이 있었습니다.

단순한 조명을 위해 백열전구로 시작한 전깃불이 훨씬 다양해졌어요. 화려한 색조도 색조려니와 다양한 모양으로 진화했습니다. 결국은 훨씬 다양한 빛으로 한없이 밝아졌다는 뜻이어요. 어쩌면 천당만큼 될걸요. 더는 올려다보지 않아도 될 만큼요. 아니 내다봐도 보이지도 않아요. 여기가 이리 밝은데 뭐가 보이겠어요. 여러 조명이 현란한 도심에서는 은하수를 못 보는 거잖아요. 대한민국 현실을 시간의 단면으로 자르면 50년 전, 극빈의 나라에서 소망하던 천국이 지상에서 다 이루어졌습니다. 의식주가 모자람 없습니다. 그러니 더 바랄 게 없어진 건 아닐까요?. 정말 소망의 끝에 다다른 것일까요?. 이 복 받으려고 교회 세우고 예수님 믿어 온 걸까요?

그때나 지금이나 교회의 소망을 이 땅에서 등 따습고 배부르게 사는데 닻 내리지 말고 영원한 빛을 향해 돋보기 햇빛 모으듯 다시 조망해 가야겠습니다. 그 소망이라야 교회가 이 땅의 가치에 천착하지 않을 최소한의 품위라도 유지할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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