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철 목사(석매교회)

17세기 일본은 기독교가 참혹한 탄압을 받는 시기였다. 서구 문물과 함께 들어 온 선교사들의 활약으로 당시 일본에는 수십만에 이르는 기독교인이 있었지만, 일본 내 권력의 변화로 기독교가 탄압받기 시작했다. 배교를 거부한 이들은 잔혹한 고문과 죽음을 맞게 되었다.

소설 『침묵』은 로마교황청에 보고된 편지로 시작한다. 일본에서 페레이라 신부가 ‘구멍 매달기’ 고문을 받고 배교했다는 것이다. 이 소식을 듣고 세 명의 사제가 일본으로 향한다. 로드리고와 가르페 신부는 천신만고 끝에 ‘도모기 마을’에 도착하였고, 수년 동안 비밀스럽게 신앙을 지켜온 신자들을 만나 세례를 주며 큰 보람을 느낀다. 움막에서의 선교 생활은 눈치를 챈 관리들의 출현으로 끝이 난다. 일본인 지도자 기치지로와 이치소우, 그리고 모키치가 관으로 출석한다.

세 사람 중 기치지로는 배교 후 도망을 치고, 이치소우와 모키치는 참혹한 죽음을 맞게 된다. 두 사람은 나무 기둥에 묶인 채 바닷가에 세워졌고, 일주일간 고통 속에 죽어가는 장면을 마을 사람 전체가 목도하게 된다. 가르페와 로드리고 신부 역시 산에 숨어서 그들의 죽음을 지켜보고 있었다.

“...다만 저는 모키치와 이치소우가 하나님의 영광 때문에 신음하고 괴로워하다가 마침내 죽은 오늘도 여전히 바다는 어둡고 단조롭기만 한 소리를 내면서 철썩이고 있다는 변함없는 사실이 참을 수 없을 뿐입니다. 이 바다의 무서운 적막함 위에서 저는 하니님의 침묵을 느꼈습니다...”

마침내 로드리고 신부는 체포되었고, 그를 취조하는 통역을 통해 페레이라의 소식을 듣게 된다. 페레이라 신부가 살아서 이름을 바꾸고 나가사키 저택에서 여자와 함께 편안하게 지내고 있다는 것이다,

통역의 말이 사실이라면 앞으로 자신에게 닥칠 시련에 불안한 마음이 스친다. 며칠 후 취조가 시작되었고, 관리들은 신자들을 시장에 팔려 온 나귀처럼 일렬로 세운 후 성화를 밟으라고 한다. 관리들은 성화에 가볍게 발을 얹어 놓으면 즉시 여기서 나가게 해주겠다고 회유한다. 반면에 거부한 사람은 즉시 칼을 들어 목을 치고 시체를 구덩이에 넣는다. 순교의 현장에는 그리스도의 장엄한 죽음, 성소의 휘장이 찢어지는 거룩한 이미지는 어디에도 없었다. 신부는 창살을 꼭 붙잡고는 ‘이것이 순교란 것인가?’, ‘주님 왜 당신은 침묵만 하고 계십니까?’라고 물으며 ‘키리에 엘레이손(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떨리는 입술로 기도한다.

어느 날 로드리고는 옥에서 나와 가마를 타고 절로 갔다. 거기서 페레이라 신부를 만났다. 페레이라는 자신이 ‘구멍 매달기’ 고문을 받았던 상처를 보여 주었다. 구멍 매달기는 손발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거적으로 둘러싸고 구덩이에 거꾸로 매달리게 하는데, 그 상태로는 즉석에서 절명하기에 귀 뒤에 구멍을 내고 한 방울씩 피가 떨어지게 하는 고문이다.

페레이라 신부는 자신의 선교를 실패로 규정했다. 탄압과 고문 말고도 더 중요한 실패의 원인이 있다고 말한다. 일본은 기독교가 뿌리를 내릴 수 없는 늪지대라는 것, 또한 일본사람들은 우리의 신앙을 받아들일 만한 토양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또 그들이 믿은 신은 우리의 하나님이 아니며, 그들의 마음속에는 일본식의 신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감옥으로 돌아온 로드리고 신부는 계속 페레이라의 말을 떠올렸다. 하지만 페레이라의 말을 부정한다. 그것은 자신이 두 눈으로 본 농민들, 비참한 순교자와 그의 믿음을 모두 부정하는 것이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인간은 거짓 믿음으로 자신을 희생할 수 없다.”

다음날부터 마음이 쇠약해지면서 고문을 어느 정도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한밤중이라 시간을 알 수 없지만, 글자가 새겨진 벽면에 얼굴을 대고 그분의 얼굴을 그려봤다. 그 얼굴은 ‘네가 괴로워할 때, 나도 옆에서 괴로워하고 있으며, 최후까지 네 옆에 내가 있다’ 하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멀리서 개 두 마리가 싸우고 있는 듯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리다가 사라지고 누군가가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렸다. ‘파수꾼이 술을 마시고 잠들었나?’ 하지만 페레이라는 코 고는 소리가 아니고 구멍 매달기 고문을 받는 신자들이 내는 신음이라 했다.

“내가 배교한 것은 저 소리에도 하느님은 무엇 하나 하시지 않고 필사적으로 기도했지만, 하느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

페레이라는 “만일 그리스도가 여기에 계셨었다면, 배교했을 것”이라고, 또한 “지금부터 누구도 하지 않은 가장 괴로운 사랑의 행위를 하자”고 로드리고 신부를 설득한다.

로드리고 신부는 페레이라의 부축을 받으면서 성화를 밟을 준비를 했다. 지금까지 전 생애를 통해서 가장 아름답고 맑고 깨끗하고 아름답고 고귀한 존재를 밟으려고 한다. 신부의 발 앞에는 조잡한 구리로 새긴 그리스도의 모습이 놓여있었다. 이때, 동판에 새겨진 그분이 신부에게 말한다.

“밟아도 좋다. 네 발의 아픔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고, 너희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다.” 성화에 발을 올려놓았을 때 아침이 왔고 멀리서 닭이 울었다.

“나는 배교했다. 그러나 주여 제가 결코 배교한 것이 아님을 당신은 아실 겁니다. 구멍 매달기 고문의 무서움과 신자들의 신음을 참을 수 없었고, 그들을 위한 사랑의 행위라는 구실로 나의 나약함을 정당화했는지도 모릅니다 … ”

“밟아도 좋다. 네 발은 지금 아플 것이다. 오늘까지 내 얼굴을 밟았던 인간들과 똑같이 아플 것이다. 하지만 그 발의 아픔만으로 이제는 충분하다. 나는 너희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겠다.~”

“주여, 당신이 언제나 침묵하고 계시는 것을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침묵하고 있었던 게 아니다. 함께 고통을 나누고 있었을 뿐”

침묵을 읽고

지난해 8월 나는 17세기 일본 천주교의 전래지 및 순교지를 탐방할 기회를 얻었다. 중심 방문지는 나가사키, 구마모토, 그리고 유후인 지역이다. 일본은 470여 년 전 로마에까지 알려진 기독교 국가이다. 1550년 하비에르 신부에 의해 가고시마에 처음 선교가 시작되어 1600년대 초에는 나가사키에서 교회의 황금시대를 누렸다.

하지만 1614년 도쿠가와 막부에 의해 금교령이 내려졌고, 이후 250년간 박해와 순교의 시대가 이어진다. 사무라이를 통해 기독교를 말살하는 정책을 펼쳤으며, 200년 동안 매년 설날에 자신이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마리아상을 밟고 지나가도록 했다.

1637년 가혹한 가쓰이에의 압정에 시마바라에서 천주교인의 봉기가 일어났으나 에도 막부와 네덜란드 연합군에 의해 진압되었다.

일본에는 더 이상 천주고 사제가 남지 않았고 교황청은 물론 마카오나 마닐라와도 소식이 끊겼다. 1865년 도대체 일본에 기독교인이 남아 있는지 프랑스 신부들이 잠입하여 살펴보니 우라카미에 3,600명 정도의 신자가 있음을 발견한다. 이렇게 200년간 교황청과 단절되어 비밀리에 신앙을 지킨 이들을 가리켜 ‘카쿠레키리시탄’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잠복 신자들을 통해 재건된 일본 천주교는 1945년 원자폭탄이 우라카미 상공에 떨어져 8,000명의 신자가 죽었고, 교회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우라카미는 박해와 원폭이라는 두 수난의 중심지이다.

이 책의 저자 엔도슈사쿠는 ‘침묵’이라는 소설을 통해서 자기 백성이 고통 하는 현실 앞에 ‘하나님은 무엇을 하시는가?’ 질문한다. 하박국의 질문과도 같다 하박국은 하박국서 1장13절에 “주의 눈은 정결하셔서 차마 악을 보지 못하시고 백성이 나쁜 짓 하는 것을 참지 못하십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저 악한 백성을 그대로 내버려 두시며, 악한 백성이 의로운 백성을 쳐서 이겨도 잠잠히 보기만 하십니까?”(쉬운성경)라고 탄식한다. 이에 대한 저자의 결론은 “나는 침묵하고 있었던 게 아니다. 함께 고통을 나누고 있었을 뿐”이다.

끝으로 나는 이 책을 읽고 400여 년 전 일본 천주교 선교사들이 자신을 파송한 본국과 주고받은 선교 보고 편지가 지금까지 잘 보존되고 있는 것에 놀라웠다. 재물을 얻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허물고 파헤치는 오늘 대한민국의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엔도 슈샤쿠, 『침묵(沈黙)』, 공문혜 역, 서울: 홍성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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