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정 목사 (복된교회)

2008 베이징올림픽 야구 준결승전에서 숙적 일본을 무너뜨리고 결승에 올라 당당히 금메달을 거머쥔 경기는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드라마였습니다. 8회, 점수 2:2. 이승엽은 타율 난조에 빠져 전 타석에서 삼진과 병살타로 최악의 팀 분위기를 만듭니다. 그러나 베테랑 김경문 감독은 컨디션 난조를 보인 레전드 이승엽을 그대로 타석에 세웁니다. 텔레비전으로 관람 중인 나는 대타를 기용하는 게 낫겠다는 마음입니다. 불안했지요. 그러나 이승엽은 레전드답게, 베테랑답게 2점 홈런을 쳐냅니다. 그 승기를 이어받은 선수들은 묶인 매듭이 풀린 듯 연타석으로 안타를 쳐 내더니 결국 6:2로 대승을 거둡니다. 실마리를 푼 이승엽은 역시 한국야구의 레전드, 베테랑이었습니다.

지난 3월 22일, 25년 프로야구 개막전이 열렸습니다. ‘해태 타이거즈’ 시절, 바람의 아들 이종범 선수가 일가라는 단순한 이유로 30년도 넘게 타이거즈 팬입니다. 내가 응원하는 ‘기아 타이거즈’는 홈경기로 치러진 개막전에서 역전, 9:2로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신성 김도영이 첫 출루에서 햄스트링 부상으로 빠진 까닭인지 8회까지 2:1로 뒤져갑니다. 조바심이 납니다. 그러나 작년 시즌 우승을 거머쥘 때, “기아는 지고 있어도 질 것 같지 않아.”라는 말과, “약속의 8회”에 기대를 걸지만, 사실은 개막전 패배라는 불안한 마음도 금할 수 없었지요. 그러나 약속의 8회에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대거 8점을 몰아치며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역시 레전드 나성범이 포문을 열었습니다. ‘기아의 해결사’, 베테랑 오브 베테랑 최형우의 2루타로 점수를 뒤집습니다. 또 다른 베테랑 김선빈에 이어 올해 첫 홈런을 날려 준 한준수까지 두루 타격감이 살아나 디펜딩 챔피언답게 9:2로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멀리 와서 지고 가는 ‘NC 다이노스팀’에게는 미안하지만 산뜻한 출발입니다. 올해 13승을 응원합니다.

레전드, 베테랑 우리 일상에 자주 사용되는 말입니다. 전설, 노련한 고참, 뭐 그런 뜻입니다. 스포츠 선수들에게 주로 사용되지요. ‘기아 타이거즈’ 팀의 감독은 선수 시절 만루 홈런의 레전드였던 이범호입니다. 베테랑 선수들은 역시 베테랑 타자였던 감독에게 ‘감독님은 가만히만 있어 달라.’ 한답니다. 상황에 맞게 활약할 수 있는 능력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이들의 활약은 팀이 위기를 만났을 때 주로 빛납니다. 숙적 일본과의 일전에서 승리의 마침표를 찍는 역할이 레전드 이승엽의 가치입니다. 개막전 패배의 위기를 뒤집어 기어이 승리를 만들어 내는 나성범은 기아의 레전드입니다. 마무리 투수로 역시 베테랑인 전상현도 뺄 수 없지요. 그 외 최형우, 김선빈, 오늘(3월23일) 등판하는 양현종은 ‘대투수’ 라는 이름으로 팀의 레전드입니다.

목하, 교회에도 베테랑, 레전드가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달성할 목표가 설정되면 어김없이 나타나 자기 몫을 치러 주는 베테랑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감독, 코치의 가르침이 없어도 감당하기 버거운 과업을 만났을 때, 의연히 일어나 홈런 한 방씩을 터뜨리는 베테랑들이 꼭 있다니까요. 그 베테랑의 역할은 그 한 방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나머지 선수들의 얼어붙은 투지를 일깨워 내는 역할입니다. 갑자기 팀 분위기가 싹 바뀝니다. 병살, 삼진아웃 당하던 선수가 분명히 2루타나 홈런을 때려 내는 겁니다. 스포츠 경기는 실력도 중요하지만, 당일의 분위기 아니겠어요?

교회에 앞서가는 베테랑, 모범적인 레전드의 역할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말없이 오랜 시간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그 자리를 지켜오신 모든 성도들이 바로 우리 교회의 레전드입니다. 오랜 역사를 지켜온 베테랑입니다. 이런 성도들의 헌신적 신앙 실천은 목사의 설교 100편보다 더 영향력 있을 때가 있습니다. 말로 가르치는 게 아니라, 삶으로 보여주는 진정한 신앙의 선수입니다. 우리는 폭발적인 힘으로 영혼의 일들을 감당해 낼 겁니다.

코로나 대환란을 겪은 이후, 교회는 적잖은 실의에 빠져 있습니다. 갖은 전략을 다 동원해도 어수선한 분위기를 단속하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속수무책인 교회에 역전의 기회가 필요합니다. 감독 역할을 맡은 목회자의 전략보다 이승엽이나, 이범호, 나성범, 최형우나, 김선빈 같은 베테랑, 레전드가 필요합니다. 오래 담금질한 신앙으로 이 난관에 역전의 홈런 한 방을 날려 줄 신앙의 레전드는 바로 당신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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