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배가 고프다. 먹고 먹고 또 먹지만, 그래도 배가 고프다. 더 많이 먹을수록 배가 고프다. 더 많이 먹을수록 더욱 더 배고파진다.

스마트폰에 손을 뻗는다. 얼마나 경이로운 기기인지! 손가락으로 화면을 한 번만 밀면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양자물리학에 이르기까지 인간사의 모든 지식을 접할 수 있다. 우리는 그 지식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배가 고프다. 충족되지 않는 이 배고픔은 도데체 무엇일까?

우리는 우리가 원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가 정보와 지식을 원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는 지혜를 원한다.

지혜와 지식의 차이는 종류의 차이이지 정도의 차이가 아니다. 지식은 소유하는 것이다. 지혜는 실천하는 것이다. 지혜를 운으로 얻으려는 것은 바이올린을 운으로 배우려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여기저기서 지혜의 부스러기를 줍기를 바라면서 비틀비틀 인생을 살아나간다. 그러면서 혼동한다. 시급한 것을 중요한 것으로 착각하고, 말이 많은 것을 생각이 깊은 것으로 착각한다. 우리는 “잘못된 삶”을 살고 있다.

저자인 에릭 와이너는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강연가다. 무엇보다 철학적 여행가다. 여행은 아침에 철학적 행복을 찾는 모험으로 시작된다. 열네 철학자들의 말과 생각이 우리에게 천천히, 기차의 속도로 다가온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기차에서 여운이 퍼지듯 책 속 철학자의 조언도 우리 인생의 지혜로 서서히 자리 잡는다. 단순명괘한 삶의 해결책이 아니라 자신만의 삶의 지혜를 오래된 철학자의 경험을 통해서 찾고자 하는 이에게 권하는 책이다.

1부 새벽

<오전 7:07. 노스다코타의 어디쯤. 열차를 타고 시카고에서 포틀랜드로 향하는 중>

1.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처럼 침대에서 나오는 법

“나는 이불아래 파묻힌 채 나를 때려눕히려고 마음먹은 적대적인 세상을 떠올린다”

잠에 관해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첫 번째 부류는 잠을 인생의 성가신 방해물로 여기고 귀찮아한다. 두 번째 부류에게 잠은 인생의 순수한 쾌락 중 하나다. 저자는 두 번째에 속한다. 저자의 철칙 중 하나는 이거다. “내 수면을 방해하지 말 것.”

<<명상록>> 은 그 어떤 책과 다르다. 사실 책이 아니다. 훈계다. 독촉과 격려 모음이다. 로마시대의 냉장고 메모다. <<명상록>>에는 “침대에서 나오기가 힘들면...”이란 문구로 시작하는 글이 많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많은 부분이 중요한 침대 문제를 다룬 비밀 논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새벽에 침대에서 나오기가 힘들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라. ‘나는 한 인간으로서 반드시 일해야만 한다’” 스토아학파나 황제, 심지어 로마인으로서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2. 소크라테스처럼 궁금해하는 법

“명백해 보이는 문제일수록 더 시급하게 물어야 한다.”

<오전 10:47. 1311번 열차를 타고 키아토에서 아테네로 향하는 중>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의 열차. 감정도 열차처럼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나의 우울은 난데없이 나타난 것처럼 보이지만 가만히 그 근원을 잘 살펴보면 숨은 원인을 찾게 된다. 나의 슬픔은 바로 앞의 생각이나 감정에 원인이 있고, 이 생각이나 감정은 그 이전의 것에 있다. 열차처럼 앞에서 감정을 끌아당기는 힘이 늘 존재한다.

소크라테스는 실패자였다. 가혹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래도 사실은 사실이다. 소크라테스가 나눈 많은 대화들은 제우스의 천둥 같은 돌파구가 아닌 교착 상태로 끝이 난다. 철학은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그게 철학의 본성이다.

신을 섬기지 않고 아테네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것이 소크라테스에게 제기된 사형 혐의였지만, 사실은 그가 무례한 질문을 너무 많이 던졌기 때문이었다. 그는 철학자의 첫 번째 순교자였다. 질문의 왕이 질문의 구름을 남기고 사라짐으로써 남은 사람들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궁금하게 만든 것이 그와 유쾌할 정도로 잘 어울린다. 우리 머릿속에 또 하나의 수수께끼를 심어놓은 것이다.

3. 루소처럼 걷는 법

“걷기는 자극과 휴식, 노력과 게으름 사이의 정확한 균형을 제공한다.”

<오후 2:42. 스위스 연방철도 59번을 타고 바젤에서 뇌사엘로 향하는 중>

창문 밖으로 눈을 돌리고 스로모션으로 펼쳐지는 스위스의 시골 풍경을 지켜본다. 적어도 나는 느리다고 생각한다. 속도는 상대적인 것이다. 장밋빛 향수 속의 기차 여행은 더 단순했던 아날로그 시절로의 귀환을 상징한다. 저자는 삶의 리듬을 바꾸기 위해, 빈둥거리는 느낌을 기억하기 위해 기차를 탄다.

장 자크 루소는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철학자, 소설가, 작곡가, 에세이 작가, 식물학자였고, 독학자, 도망자, 정치 이론가, 마조히스트였다. 무엇보다 그는 산책자였다.

루소는 어디에도 뿌리 내리지 않은 최초의 자유인이었고, 오늘날 우리는 그런 사람을 도시 유목민이라고 부른다. 모든 곳이 집이요, 그 어디도 집이 아니었다.

루소에게 걷기는 숨쉬기와 같았다. “나는 멈춰 있을 때에는 생각에 잠기지 못한다. 반드시 몸을 움직여야만 머리가 머리가 잘 돌아간다.” 그는 걸을 때 늘 지니고 다니던 게임용 카드에 크고 작은 생각을 적었다. 그가 걸어 다닌 첫 번째 철학자는 아니지만, 걷는 행위에 대해 이렇게 두루 철학적으로 사고한 철학자는 루소이전에 없었다. 걷기는 움직임 속의 성전이다.

4. 소로처럼 보는 법

“소로에게 간소한 삶, 고독, 자연주의는 더 큰 것, 바로 시력을 위한 것이었어요.”

<오전 11:12. 암트랙의 아셀라 2158번 열차를 타고 워싱턴D.C.에서 보스턴으로 향하는 중>

마르쿠스처럼 소로 역시 지혜를 찾아다녔다. 탁월한 채집가였던 소로는 인도와 중국의 문헌을 처음으로 파고든 서구 철학자 중 한명이었다. 좋은 철학은 좋은 전구처럼 방 안을 환히 밝힌다. 전구가 방 안을 밝혀주는 한, 나의 방안을 밝혀주는 한 어디서 만들어졌는지, 가격이 얼마인지, 몇 와트짜리인지, 수명은 얼마나 되는지, 어떤 과학적 원리가 숨어 있는지 같은 것은 중요치 않다. 소로가 동양으로 눈을 돌린 이유는 평범했다. 인생의 위기. 1837년이었다. 소로는 당시 관습이었던 체벌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콩코그 학교의 교사직에서 막 해고된 참이었다. 무일푼에 갈곳도 없었다. 그때 우연히 책 한권을 만났다. “영국령 인도에 관한 역사적, 기술적 해설”이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소로는 묵묵히 책을 읽어내며 보석을 캐냈다. 책 속에 있는 생경하고도 친숙한 아이디어들이 천천히 소로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소크라테스와 소로 둘 다 무례한 질문을 던져서 사람들을 짜증나게 했다. 두 사람 다 자기가 속한 시대의 골칫거리였고, 훌륭한 자극제였다. 아테인들은 소크라테스를 처형했고, 콩코드 주민들은 소로의 글을 혹평했다.

소크라테스처럼 소로도 모든 철학은 궁금해하는 데서 시작한다고 믿었다. 소로는 이 생각을 여러 번, 여러 방식으로 표현했다. “현실은 너무나도 멋지다.” 소로가 경이로워하는 10대처럼 보인다는 점이 좋다. 어쩌면 둘은 그리 다르지 않은지도 모른다.

마르쿠스와 달리 소로는 아침형 인간이었다. 소로는 새벽 호수에서 목욕을 한 후 자신의 “아침 일과”인 읽고 쓰기에 착수했다. 매끈하지 못한 일기를 수정하거나 책의 한 챕터를 다듬었을 수도 있다.

“소로는 대지와 자기 사이에 대단한 의견이라도 오가고 있는 것처럼 걸었다.” 소로의 친구였던 존 와이스가 소로를 두고 한 말이다. 소로는 말한다. “어떤 대상을 이해하는 것을 멈출때에야 나는 비로소 그 대상을 보기 시작한다.” 피로에 지친 눈으로는 조금밖에 보지 못한다.

소로처럼 천천히 보기란 쉬운일이 아니다. 시각은 가장 속도가 빠른 감각, 예를들어 미각보다 훨씬 빠른 감각이다.

자발적으로 고독에 뛰어든 역사상 가장 훌륭한 실험의 부지인 소로의 오두막(1845~1847년)은 관광객들 무리로 늘 붐빈다. 이 사람들이 저자의 고독을, 저자의 소로적 순간을 방해하고 있다. 다 떠나버렸으면 좋겠지만 그들은 떠나지 않는다. 저자 스스로 생각한다. “나 또한 문제의 일부라는 사실은 무시한다.” 소로가 저자에게 말한다. “무엇이든 제대로 보려면 거리를 두어야 한다.”

5. 쇼팬하우어처럼 듣는 법

“소음에 정신이 팔린 사람은 음악을 듣지 못한다.”

<오후 2:32. 도이치반의 151번 열차를 타고 함부르크에서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는 중>

쇼팬하우어의 에세이 첫 페이지를 읽는다. “세계의 고통에 관하여” , “자살에 관하여”, 어둠이 내려앉는다. 당분간 이 어둠은 떠나지 않을 것 같다. 모든 페이지와 단어에 염세주의가 스며 있다. 쇼팬하우어는 자신의 침울함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

이런 염세주의를 철학 탓으로 돌리지 마시길. 쇼팬하우어의 암울한 세계관은 플라톤이나 데카르트를 읽기 훨씬 전인 어린 시절에 형성되었다. 열일곱 살에 부모와 함께 유럽을 여행하던 쇼팬하우어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이 세상은 선한 존재의 작품일 수 없다. 세상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려고 생명체를 창조한 악마의 작품일 것이다.” 몇 년후 철학에서 경력을 쌓기 시작한 쇼팬하우어는 친구에게 이런 편지를 쓴다. “삶은 끔찍한 사건이야. 나는 이러한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살기로 결심했다네.”

이 염세주의 철학자는 “삶은 삶을 가장 덜 인식할 때 가장 행복하다.”라고 말한다. 예술과 음악의 애호가였던 쇼팬하우어는 가장 심오하고도 아름다운 미학 이론을 전개했고 여러 예술가와 작가에게 수 세대에 걸쳐 영향을 주었다.

언어는 인간이 만든 것이지만 음악은 중력이나 뇌우처럼 인간의 사상과 무관하게 존재한다. 숲속에서 울리는 트럼펫 소리를 아무도 듣지 못한다 해도 트럼펫은 여전히 울린다. 언젠가 쇼팬하우어는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음악은 존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깨닫는다. 이 세상에서의 일시적인 유예가 아닌, 더욱 풍성한 다른 세상으로의 침잠, 바로 이것이 쇼팬하우가 음악안에서 본 것임을. <다음호에 계속>

에릭 와이너,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 김하현 옮김, 어크로스 출판사,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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